[기타] 일반인이 궁금해하는 발레-4 ballerino

 
다음카페 '달안개의 속삼임' http://cafe.daum.net/moonmist 카링님이 2005년 1월  일반인 대상으로 설문조사 한 자료입니다.

 
 
ballerino
 
발레를 처음 본 초보 관객들이나 아직 잘 모르는 사람들이 꼭 짚고 넘어가는 것 하나. 남자 무용수들! 재즈나 힙합 등의 춤을 추는 남자들은 멋지다는 소리를 듣는 현실입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왜 발레를 하는 남자들에 대해서는 이러쿵저러쿵 뒷말이 많아야 하는 걸까요? 오해도 많고 이래저래 탈도 많고 말도 많은 남자 무용수들에 대해 속속들이 분석합니다.
 
 
 
발레를 하는 남자들은 다 여자 같나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발레는 남성미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무용이거든요. 공연을 한번 보시면 이해가 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힘찬 도약이 대부분을 차지하니까요. 일부에서는 발레 무용수는 여장남자라도 되는 것처럼 말하기도 하는데, 그건 모르시는 말씀! 심지어 걸음도 여자처럼 걷고 말도 여자들의 언어를 쓴다고 생각하는 분도 만난 적이 있는데요. 남자 무용수들의 몸을 보시면 그런 말이 쏙 들어갈 겁니다. 춤으로 다져진 다부진 근육이라거나, 탄력이 넘치는 걸음걸이 등. 절대로 발레는 여성들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그리고 성격이라거나 취향은 개인적인 차이이지, 절대 상관이 없습니다. 무용에 관련된 남자들은 여성스럽다는 편견은 이제 버릴 때입니다. (얼마 전에 모 콩쿠르의 한국무용 남자부문이 멋졌다는 말을 하자, 남자도 한국무용을 하느냐는 말이 돌아왔습니다. 대체 어떻게 해야 무용이 여자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할 수 있을까요?)
 
 
남자 발레 의상 착용 역사는 언제부터인가요?
 
-발레리노 이야기만 나오면 일반인들이 묻는 질문 중에 하나가 왜 그렇게 민망하게 몸의 선이 다 드러나면서 부적절(?)한 신체의 굴곡까지 내보이는 의상을 입어야 되냐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의상 착용이 일반화가 된 것은 1세기도 되지 않는답니다. 한 남자 무용수가 의상 때문에 해고를 당한 사건이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1911년 러시아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발레의 천재라고 일컬어지는 바슬라브 니진스키의 지젤 사건인데요. 당시 발레계를 벌컥 뒤엎었답니다. 지젤의 알브레히트 역을 맡았던 니진스키가 타이즈 위에 덧입어야 하는 트렁크를 입지 않고 나온 것입니다. 마린스키 황실극장의 품위를 실추시켰다는 이유로 그는 해고되었습니다. (물론 이 해고에는 여러 가지로 부당하고 미심쩍은 부분이 많다고 하며, 배후의 인물이 있었다는 소리도 있는데요. 그 이야기까지 다루지는 않겠습니다. 관심이 있는 분은 개인적으로 발레 역사를 찾아서 읽어보길 권유합니다!) 당시의 남자 무용수들은 튜닉 위에 운동복처럼 생긴 바지를 덧입었어야 하는데, 니진스키는 그것을 입지 않고 나온 것입니다. 또한 상의는 그 당시의 격식(하체의 일부를 가릴 정도로 긴 윗도리)이 용납할 수 없을 정도로 짤막했습니다. 무대에 등장하자마자 귀족들은 외설이라고 생각해 큰 충격에 빠졌고 하체의 해부학적인 면이 너무 부각되는 것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습니다. 그는 다음날 해가 밝자마자 해고 통보를 받고 쫓겨났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이후 유럽에서 창단된 발레 뤼스에서 맹활약을 했습니다.
발레 뤼스에서는 니진스키가 입었던 것 같은 의상을 착용하는 것이 보통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20세기 중반에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루돌프 누레예프가 키로프 발레단에서 돈키호테 공연에서 바질 역을 맡았을 때, 승마바지 같은 의상이 자신의 몸매 선을 망친다는 이유로 몸에 쫙 달라붙는 하얀 타이즈를 입고 무대에 섰습니다. 여전히 권위주의적인 성향이 남아 있고 보수적이던 극장측에서는 크게 성을 내고 다그쳤지만, 누레예프는 고집을 꺾지 않아 결국 극장측은 두 손을 들었다고 합니다. (그 이후 그는 서방으로 망명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타이즈가 관례처럼 되어 있습니다. 아마 이 편이 움직이기에 수월하고 몸의 선도 효과적으로 보일 수 있으며 더 많은 장점이 있다는 것을 느낀 남자 무용수들이 너도나도 착용한 모양입니다. 보통 타이즈 착용은 1930년 이후에 널리 보급되었다고 하지만, 지금의 의상이 확립된 것은 20세기 중반 이후라고 봐야 합니다.
 
 
남자 무용수의 타이즈 재질은 무엇인가요? 찢어지거나 행동반경제약은 없는지요?
 
-일반적으로 쓰는 원단의 이름은 라이크라(Lycra)나 Full-Dull이라고 하는 원단인데 신축성이 아주 좋은 원단입니다. 거의 무용하는데 제약은 없지만 여러 번 사용하거나 바느질이 약하게 되었을 때에는 구멍이 나는 수도 있지요. (이건 UBC 측의 답변입니다.)
 
 
왜 남자들은 여자들을 도와주기만 합니까?
 
-절대로 이건 오해입니다. 그리고 원래 발레는 남자가 하던 무용이었습니다. 사실 예전엔 여자는 남자 무용수들이 쉬는 동안 시간을 때우는 정도의 존재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남자 무용수가 그런 취급을 받기 십상이지요. 어려운 테크닉은 남자 무용수 전용이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지금은 발레라고 하면 여자 무용수들이 먼저 떠오르는 현상이 일어났을까요? 이것은 일반적으로 굳어진 발레의 이미지가 지극히 여성 중심적이기 때문입니다. 주위에 물어본 결과 발레라고 하면, 하늘하늘하고 새하얀 긴 드레스, 신비로운 토슈즈, 비극적인 공주의 사랑 이야기, 우아한 백조, 아름답고 순결한 여인, 부드러운 동작 등, 뭐 하나 남자에 관련된 표현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호두까기 공연 때 단체관람을 온 유치원생 중 하나는 남자가 발레를 한다는 걸 믿지 않더군요.)  그러나 발레의 시초는 지극히 남자 중심입니다. 루이 14세가 발레를 했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17세기 후반 이전엔 전문적인 여성 무용수조차 없을 정도로 남자 무용수가 주도권을 단단히 잡고 있었습니다. 1700년대엔 발레를 배우는 소녀들이 급증하긴 했지만, 그녀들의 사회적인 지위는 극도로 낮았습니다. 이대로라면 발레는 남성들의 전유물이 되고도 남았을 법한데, 지금의 상황은 어떻게 이 정도로 심각한 역전이 되었을까요? 이렇게 된 배경에는 세 명의 마리(Marie)가 주도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발레역사로 보자면, 최초로 남자처럼 춤을 췄다고 일컬어지는 여성 발레의 선구자 마리 카마르고(Marie Camargo)와 귀족적이고 우아하며 아름답고 지적인 자태와 연극적이고 진솔한 감정표현으로 뭇 남성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 마리 살레(Marie Salle)와 낭만주의 시대를 연 최고 스타이자 남자의 위치를 단번에 끌어내린 마리 탈리오니(Marie Taglioni) 이 세 명의 마리 때문에 발레에서의 여성의 위치가 격상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세 명 모두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이제 관객들은 다소 투박한 남자의 춤보다는 가련하고 어여쁜 여성의 춤을 원하게 되었습니다. 마리 카마르고와 마리 살레의 대결 아닌 대결이 시선을 끌고, 마리 탈리오니에 의해 여성의 주도권은 절정에 오르게 됩니다. 파트너와 함께 춤추는 pas de deux도 낭만발레 시대에 탄생한 것입니다. 발레리나들이 환상의 존재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서는 남자 무용수들의 서포트가 절실히 필요했고, 그로 인해 남자 무용수들은 여자 무용수들을 운반(?)하는 존재로 격하되는 수모를 겪는 신세가 되었던 것입니다. 심지어는 지금 있는 무용수들은 전부 자르고 힘 좋은 트럭 운전자들을 데리고 오라는 말까지 나왔을 정도라고 하니, 어느 정도였는지 예상이 되겠지요? 그러나 20세기에 등장한 천재적인 남자 무용수들로 인해 위치가 다시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질문 내용에 대한 답변으로 들어가 보자면, 절대로 도와주기 위해 있는 역할이 아닙니다. 이건 일일이 글로 설명한다고 되는 문제가 아니니, 언젠가 시간과 금전적 여유가 생기면 공연을 직접 눈으로 보는 것을 추천해 드리겠습니다. 작품 몇 가지에서 예를 들자면, 지젤의 경우엔 알브레히트와 힐라리온의 연기력이 지젤 못지않게 작품의 성공을 좌지우지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리고 라 바야데르를 보자면, 솔라 장군의 우유부단함과 사랑과 권력 사이에서의 갈등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페트르슈카나 스파르타쿠스의 주인공은 남자이며, 파리의 불꽃이라거나 장미의 정령 등에서는 남자 무용수의 과감한 도약과 카리스마에 매료될 것입니다. 그 외의 여러 작품들에서도 남자 무용수의 역할은 지대한 영향을 끼칩니다. 절대로 여자를 돋보이기 위한 장식품도, 운반하기 위한 일꾼도 아닙니다. 발레를 보게 될 일이 생기면, 남자 주인공 중심으로 감상하는 것이 어떨까요?  
 
 
정말 이화여대 무용과는 4년마다 여자를 들어주기 위한 남자들을 뽑나요?
 
-이 질문도 상당히 많이 들었는데요. 정답부터 말하자면, 이화여대에서 개교 이래 입학한 남학생은 한 명도 없다고 합니다. 당연한 것 아닌가요? 그럼 여자대학을 개설한 의미가 없지요. 여대는 대부분 보수적이라는 사고방식이 만연해 있는데, 저런 소문은 어디서 나왔는지 도통 모르겠네요. 그 대신, 학점교류를 하는 다른 학교 남학생들이나 교환학생으로 오는 외국 남학생들은 있습니다. 무용과는 비공식적으로 남학생을 선발한다는 근거 없는 소문이 공공연히 떠돌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이화여대 입학 상담 게시판에도 몇 건 올라왔더군요. 본교 학부과정은 남학생은 받지 않습니다. 이런 식의 답변이 달렸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무용과의 특성상, 특히 발레의 경우 남자 파트너가 필요하다는 인식 때문에 저런 오해가 생긴 듯한데요. 일단 남학생이 필요하긴 합니다만, 필요한 경우에는 교수님과 친분이 있는 다른 대학 남학생이 무용공연을 도와주는 것 뿐이라고 합니다. 얼마나 소문이 많이 퍼졌으면, 이화여대 학보에까지 이 내용이 공식적으로 실려 있습니다.
 
 
남자 무용수들은 군대에 가나요?
 
-한국무용협회가 주최하는 신인무용경연대회, 동아일보에서 주최하는 동아무용콩쿠르 등 국가에서 인정하는 대회에서 입상을 할 시에는 병무청으로부터 허가 받은 군 면제가 가능합니다. 그것도 1위 입상을 해야만 예술분야 공익근무 특전이 부여됩니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자신의 실력을 알기 위해 순수한 마음으로 임하는 것이 아닌, 군 복무를 담보로 두고 콩쿠르에 참가해야 하는 주객 전도 현상이 일어납니다. 아무리 난다 긴다 하는 다른 나라의 국제대회에서 상을 탔다고 해도, 국가에서 인정하는 대회가 아니면 무용지물입니다. 일정 나이가 지나도 수상을 하지 못할 경우엔 군대에 어쩔 수 없이 끌려가는 불상사가 일어납니다. 그래서 번번이 고배를 마시는 남학생들의 경우엔, 마음이 급해져서 국가고시를 본다거나 휴학을 해서 입영 시기를 늦추기도 한다고 들었습니다. 보통 심사위원 측에서는 나이가 많은 참가자에게 1등상을 주는 분위기라는 말도 있습니다.
남자 무용수들은 항상 군대 때문에 노심초사하며 불안에 떨게 됩니다. 남들 다 가는 군대, 한번 갔다 오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될까 싶은 분들이 있을지 몰라서 말씀 드리는데, 군대에 갔다 오면 오랜 시간의 트레이닝으로 발레에 적합하게 만든 몸이 상당히 망가집니다. 특히 발레에서 쓰는 근육은 일반 운동과는 현저히 틀립니다. 그리고 알다시피 발레는 특히 무대생활이 짧은 무용입니다. 제대 후 다시 복귀해서 예전의 실력을 되찾는 것은 여성 무용수가 임신 후에 다시 무대활동을 하는 것과 같은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출산을 한 여성 무용수가 주역으로 복귀하는 경우는 있어도, 현역병 출신으로 솔리스트 이상에 오르기는 힘듭니다. 음악에 대해서는 100개 이상의 국제대회에서 2위 안에 들기만 하면 병역혜택이 있는 것에 비해 심각하게 국가적인 관심이 부족한 현실입니다. 이런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멋진 무대에 오르는 무용수들에게 큰 박수를 보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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